2026. 3. 6. 09:00ㆍ수수한 읽기

2013년 화이트데이 즈음, 나를 늘 챙겨주던 언니가 함께 가자던 시집 발매 기념 낭독회.
재미있게도 그 시인은 내가 이미 두 번 만난 적 있는 시인이었다.
한 번은 2008년 봄, 학과 시인 초청 강연에서,
두 번째는 2009년 가을, 문과대학 시인 초청 강연에서였다.
각기 다른 계절과 장소에서 만났던 그는 내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과 맞닿아 있었다.
처음 시인을 알게 된 건 시수업 전이었다.
친구가 아이돌 같은 시인이라고 소개해 줬고,
그 말에 따라 나도 시집을 구매했다.
그의 시와 글귀 덕분에 친구들 사이에서 살짝 자랑거리가 되기도 했다.
그 후 몇 년 사이 시인과의 재회는 늘 특별했다.
한 번은 공황장애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,
나 역시 시 수업을 들으며 시에 푹 빠져 있던 때라 그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였다.
4년 후, 언니가 제안한 또 다른 낭독회에서는
그가 천재 시인이나 위태로운 예술가가 아닌,
한 사람의 남편이자 아빠로 다가왔다.
그 따뜻한 모습은 내 마음속 계절과 맞물려
특별한 추억으로 남았다.
2020년, 임신 8개월 차였던 나는 책장에서 이 책을 꺼냈다.
하나의 생명에 대해 발언하고 그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언어에 대한 인내심과 삶에 대한 견고함을 더욱 필요로 하는 듯 싶다
아이가 뇌에 주름이 생기기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,
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였다.
왜인지 모르지만 문득 이 책이 떠올랐고,
반나절씩 이틀 동안 초면인 것처럼 읽었다.
여전히 빛나고 있는 그의 문장들에 기뻤고,
지난 7년 동안 내게 스쳐간 수많은 일들을 떠올렸다.
처음 이 책을 읽던 시절 부러워만 했던 이 부부의 온기가
이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.
책을 읽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, 나는 여전히
그 따뜻한 다정과 보살핌 안에 있다.
이 순간마다 과거, 현재, 미래가 동일한 신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고,
그 중력과 은총에 겸손히 감사하게 된다.
아, 나도 이제 곧 엄마구나.
‘엄마’라는 말은 아직 미뤄두고 싶었던 심정들.
최근 여러 가지 일들을 겪고 불안과 통증에 시달리며
그 심정들에 죄책감이 따라와 더 아팠다.
이 시인도 태교 중 늘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었으니까,
그 사실이 오히려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.
그리고 그가 말하는 ‘곁’, ‘다정’, ‘돌봄’.
그의 시어가, 시구를 꿰는 솜씨가 얼마나 남다르고 새로웠는지
워낙 유명하지만, 이렇게 따뜻한 말들은 이 책에서 가장 빛난다.
시인들의 언어란, 그 시인 자체인 것이 정말 맞다는 생각이 든다.
이런 책, 내내 어여쁘소서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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